정호의 아르바이트
약 보름전인가요?
가게일을 여느 때와 달리 일찍 마치고 집에 갔습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니
정호가 안 보이더군요!!!
평소때에는 오후 5시 30분이면 알바 갔다 와서
자기방에서 작년말에 새로산 노트 4를 가지고 꼼지락 꼼지락 했을 시간이었습니다.
제 방에서 옷을 갈아입고 나오니
욕실에서 정호가 샤워하고 나오더군요
" 왔어요? "
( 이 녀석은 꼭 " 아빠~~~ 수고하셨습니다. " 가 아니고 " 왔어요? " 이럽니다. )
" 응~~~ 샤워하고 있었냐~~~ "
" 네!!! "
아들과의 상투적(??)인 인사가 끝나고
저는 제 방에서 노트북을 켭니다.
집에 와서 노트북 켜는 일이 제겐 일상입니다.
TV는 않봐도 노트북은 꼭...
노트북 보는 시간이 TV 보는 시간보다 배 이상은 많습니다.
노트북 켜고 블로그에 글을 올리려는데 정호가 슬며시 제방으로 들어옵니다.
"아빠~~~ "
하는 정호의 손에 무언가 들려있습니다.
면도기 Set와 약간의 돈
" 이게 뭐야? "
" 저 오늘 한달 알바한거 월급 탔어요~~~ "
" 얼마? "
" 70만원정도 되요 ?"
"그런데 이건 뭐야? "
" 알바 월급 처음타서 아빠 선물 산거예요~~~ "
첫 월급도 아니고 첫 알바비 타서 제 면도기를 사온걸 보고
정호가 대견하기도 하고 다 컸구나 하는 생각에 콧등이 시큰합니다.
" 알바비 얼마나 한다고 너 필요한 것 사는데 쓰지 "
" 식구들 선물 다 하고 남은 돈은 쓸께요~ "
" 근데 면도기는 알겠는데 이 돈은 또 뭐야? "
" 작년에 개통한 제 핸드폰비 2월달 알바 할때까지는 제가 일부 낼께요~~ "
" 첫달치 7만 5천원이에요~~ "
" 그냥 둬~~~~ 아빠가 내는데 뭘.... "
" 아네요~~~ 제가 알바해서 낼 수 있는 달까지는 낼께요~~ "
정호녀석 이렇게 이야기하고는 계면쩍은듯 나가려합니다.
면도기만 받고 돈은 안받으려 하다가
그래 너도 노동의 댓가를 알고 돈이 어떻게 들어오고 나가는지도 알라는
경제 개념 공부시킨다고 그냥 받기로합니다.
" 그래~~ 정호야~~~ 아빠가 고맙게 받겠다. 잘 쓸께~~ "
" 네~~ "
정호 자기 방으로 갑니다.
잠시 생각을 합니다.
작년 수능 끝나고 일찌감치 자기가 원하는 항공계열 학과에 수시합격하더니
며칠 뒤부터 여기저기 알바를 알아봤습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건대역 주변의 뷔페집 무스쿠스에서 일한다하더니
토요일, 일요일은 또 웨딩 홀 알바를 했습니다.
공부는 좀 그저 그래도 사고 방식은 능동적, 실천적입니다.
자기는 대학교 나와 하루라도 쉬지않고 일할거라고...
군 생활도 제가 병 출신이라 군대는 장교(ROTC, 군 장학생)로
복무하는게 아빠 의견이다 했더니
저도 그런다고 합니다.
다행히 대학교도 항공 계열이라 공군 ROTC 지원에 유리하더군요!!!
면도기와 돈을 받아놓고 저녁 늦게 들어온 집사람에게
" 면도기야 그렇다 치고 이 돈을 내가 받아야 해? "
" 정호, 다시 줄까? "
했더니 집 사람 그냥 다 받으라 합니다.
직장가서 받은 첫 월급도 아닌데 첫 알바비로 받은 돈으로
사온 면도기와 핸드폰비라 받기가 미안합니다.
알바 갔다 와서 저도 힘이든지 씻고 바로 자던데...
ㅠㅠ
사실
정호가 알바 선물로 내복대신 면도기를 산건 저를 위한 배려였습니다.
한겨울 영하 15도에도 상가에 반팔만 입고 다니는 녀석인데
애초부터 제 선물로 빨간 내복은 눈에 안들어 왔고
몇년을 같은 면도기를 쓰는게 정호 눈에 들어왔던 모양입니다.
알바비 얼마나 된다고 할머니에게 내복도 선물하고...
누나와 엄마 선물까지 챙기고....
그걸 받아든 엄마(할머니)의 얼굴에서도 손자의 따뜻한 마음씨에 미소가 번집니다.
우리 정호가 내 내복을 다 사줬다고 ....
내일이면 또 경로당에서 손자 자랑, 내복 자랑 하시겠죠~~~
첫 알바비로 받은 돈은 온 식구 선물에
자기 웨딩홀 알바에 필요한 외투와 구두를 사느라
어렵게 번돈 다 나갔을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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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나 |
정 호 |
정호가 사준 면도기를 욕실에 수납장에 넣어두곤
돈도 그냥 내 통장에 넣을까 하다가
아니야합니다.
그리고 한가지 생각을 합니다.
구정, 설날때 정호와 예나에게 각각의 통장을 주렵니다.
정호한테 받은 돈 7만 5천원 고스란히 넣어서요!!!
( 예나도 마찬가지로 7만 5천원 )
돈이 인생의 다는 아니지만 없으면 불편한 것
이 통장으로 너희들 인생을 설계 하기를 바란다고 말하렵니다.
며칠을 면도기를 그냥 두다가 보름여가 지난 오늘
처음 면도기를 꺼내 사용했습니다.
아들 녀석이 사준 면도기라 그러나요?
턱선을 지나 삐죽이 솟은 수염을 날카롭게 베고 지나가는
칼의 촉감이 여느때와는 사뭇 다른
기분좋고 상쾌하게 느껴진 오늘 새벽이었습니다.
예나, 정호
아빠가 사랑한다. 무지 많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