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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 사는 이야기 】/▶나의 이야기

6.25 참전 군인 국가 유공자 신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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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참전 군인 국가 유공자 신청

 

 

 

**  PLAY 버튼을 누르고 글을 읽으시기 바랍니다.  **

 

유튜브 동영상 : https://youtu.be/zZOCgNXU9eY 

 

 

저번 주 금요일(1/12) 아버님의 6.25 참전 국가 유공자 신청을 위해

삼각지 역에 있는 서울 지방 보훈청에 다녀왔습니다.

 

 

먹고 살기에 바빠 6.25 참전 군인 국가 유공자 등록 제도가 있는지도 모르고 살다가 

1983년 아버님 작고(作故)후 35년 만인 작년에야 겨우 알게 되었습니다.

당일 구치소 접견이나 재판이 없는 관계로 변호사님에게 아버님의 국가 유공자 증서 신청 문제로 

개인적 일 좀 보겠다는 양해 말씀을 드렸더니

그런 일인데 하시며 흔쾌히 다녀오라고 하셨습니다.

 

헌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필이면 올해 들어 제일 추운 날

나름대로 서류를 잘 구비해서 갔는데 아들보다는 배우자(어머님)가 선 순위권자가 되기 때문에

어머님의 주민 등록증 사본, 혼인 관계 증명서를 다시 떼와야 한다네요~~

떼어서 다시 와야 하냐고 물어보니 다행히  그렇지는 않고

뗀 서류를 FAX로 보내라 합니다.

담당 주무관과 아버님의 군대 인적 상황 설명 후 사무원이 6.25 전쟁 기간 내내 오롯이 몸으로 다 막아내셨는데

어머님에게 국가의 그 어떤 금전적 혜택도 못 드려 죄송하고 아버님 참 고생 많았습니다 하는데

정말 감사하고 고맙더군요~~

누군가에게 아버님이 6.25 참전 군인인데 고생하고 감사했습니다라는 말은 

이번이 개인적으로 처음입니다.

물론, 제가 간 곳이 바로 이런 일을 처리하는 국가의 주무 기관인 서울 지방 보훈청라는 사실은

차치하고도 정말 고마웠습니다.

 

 

집으로 가서 어머님 주민 등록증 가져오고 다시 자양동 주민 센터에 들려서

어머님의 혼인 관계 증명서를 떼어서 서초동 사무실로 왔습니다.

어머님 주민 등록증 사본과 혼인 관계 증명서를 FAX로 발송

비로소 모든 접수 과정이 끝났습니다.

 

날씨는 제일 추운 날이었지만 서울 지방 보훈청과 자양동 주민 센터를 나서는 발걸음은 가볍고

마음만은 따뜻한 그날이었습니다.

 

못난 큰 아들, 아버님 앞에서는 한없는 불효자이지만 이제야

마지막으로 남은 당신의 명예를 되찾는 것 같아

종일 기분이 좋은 하루였습니다.

 

이제 기다리는 일만 남았습니다.

국가 보훈처 심사 위원회의 여러 가지 검증을 거쳐 아버님의 6.25 참전 사실에 이상이 없으면 집에

어머님의 이름으로 국가 유공자 증서와 해당 설명문과 국립 호국원 이장 안내서를

등기로 부쳐 준다 합니다.

 

다음 달 아버님 제사상에는 부디

명예스러운 6.25 참전 유공자 증서가 올라갈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아버님의 6.25 참전 국가 유공자 증서 신청은 진짜  처음부터 난관이었습니다.

국가 보훈처의 참전 유공자 신청에 필요한 서류를 인터넷에서 찾아서 출력해 쓰려고 봤더니

허이구~~~

 아버님 주민 등록 번호 하나 모르는 상태였습니다.

허여,

이번에는 민원 24 사이트에서 주민 등록 등본을 떼어봤더니 아버님은 이미 

돌아가서인지 주민 등록 등본란에 나타나질 않습니다.

 

다시 이번에는

법원, 전자 가족 관계 시스템에서 가족 관계 증명서와 제적 등본을 떼어봅니다.

헌데, 가족 관계 증명서란에는 아버님은 표기가 되어 있는데 주민 등록 번호란은 공란이고

제적 등본상에는 돌아가신 할머님은 주민 등록 번호까지 나타나는데 

아버님은 아예 성함조차 빠져 있었습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지??

예전에는 이런 서류들은 수기로 작성하여 빠지거나 오류가 있었다는 말은 종종 들은 적이 있습니다.

 

어떻게 할 줄 몰라하다가 

1/8(월)  : 신분증 지참 후 자양동 주민 센터에 가서 아버님의 제적 등본을 뗍니다.

아들은 아버님의 제적 등본을 신분증만 있으면 바로 떼어줍니다.

이 서류에 비로소 아버님의 주민 등록 번호가 나타납니다.

32XXXX - 10XXXXX

 

다음에는 아버님의 군번입니다.

국방부 홈 페이지 육군에 민원을 넣었더니 담당자가 저에게 전화를 걸어

주민 센터에 가서 구원장(구 개인 등록표)을 떼어보라 하더군요~~

 

1/9(화)  : 다시 주민 센터 행(구원장 $ 병적 증명서 발급)

업무 담당 아가씨에게 전, 후 상황 설명하니 안쪽의 서류를 보관하는 케비넷으로 가더니 5분이 되도록

안 나타납니다.

몇 분 더 그런 시간이 흐른 후 다시 자리로 오더니 찾을 수가 없다 합니다.

서로 난감해하고 있던 차에

혹시 통, 반을 기억하냐고 다시 되묻는 말에 반사적으로 4통 5반이요~~ 합니다.

공부는 아주 잘은 아니지만 기억력은 최고입니다.

ㅎㅎ

본적지하고 예전의 통, 반은 본능적으로 기억하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다시 그 케비넷 창고로 가더니 이내 아버님 구원장을 찾아옵니다.

서류 출력 후 제게 건네는 구원장 첫 페이지에 아버님의 군번이 보입니다.

육군, 037XXXX, 통신(146), 하사(일등 중사) 전역

드디어 군번 찾았습니다.

 

그 다음은 병적 증명서인데 병적 증명서는 그 자리에서 바로 떼어주는게 아니고

주민 센터에서 국방부로 병적 신청(신원 확인)을 하고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 합니다.

집으로 다시 옵니다.

2시간 후 집에 있는 저에게 국방부에서 전화가 오고 지금 주민 센터에 가면 

아버님의 병적 증명서 발급을 받을 수 있다 하더군요~~

바로 다시 주민 센터 행

병적 증명서를 보니 아버님의 군대 병과, 계급은 물론 군 복무 기간까지 나타나 있더군요~~

 

 

1950.11. 30 ~ 1954. 9. 20

( 개전 5달 후 입대,  휴전(1953년) 이듬해 전역 )

 

3년 10개월(46개월) 군 복무

저나 제 아들 군 복무 기간을 합쳐야 되네요~~

정호와는 따블(X2) 이상이 되는 군 복무 기간

 

 

주민 등록 번호, 군번 찾는데만 며칠 걸렸습니다.

그 후 국가 보훈처 홈 페이지에서 국가 유공자 신청에 필요한 아랫 서류를 출력합니다

 

(1) 국가 유공자 증서 신청 교부서  -- 1부

(2) 참전 유공자 등록 신청서  --  1부

(3) 병적 증명서  --  1부

(4) 제적 등본  --  1부

(5) 유족 입증 서류(가족 관계 증명서)  -- 1부

(6) 신청인 신분증  --  1부

 

출력한 서류의 각종 기재 사항을 정확히 입력 후 1/12(금) 삼각지역의 서울 지방 보훈청을 방문하여

신청 과정을 모두 마쳤습니다.

 

 

이런 모든 과정보다 먼저 1/4(목) 국방부에 아버님의 군번을 찾아 달라는 민원을 넣은 적이 있는데 

( 관련 글 : http://blog.daum.net/cwk0507/3647 )

병적 민원과 담당자로부터 이메일이 왔었습니다.

해당 사항은 자기 부서 사항이 아니라 국방부와 군사 연구소 담당이므로 병적 민원과의 민원 글은 

삭제해 주시고 본 내용을 다시 국방부 민원으로 올리면 군사 연구소와 같이 답변을 해준다 하여

다시 국방부로 민원을 올렸습니다.

 

며칠 후 XXX 소령이라는 분이 전화를 제게 하고 아버님의 군 생활을 집에 남겨진 사진 8장을 중심으로 

이야기했더니 모르스 부호 통신병은 대단한 분이라 하십니다.

이후 정확한 아버님의 군 생활은 자기가 군사 연구소에 내용 전달 후 최종 이 건에 대한 사항을 

제 메일로 보내준다 했습니다.

 

그분과의 10여분 정도 통화 후 나중에 몇 가지 사실을 유추해냈습니다.

 

 


 

 

이번 아버님의 6.25 참전 군인 국가 유공자 신청을 하는 과정에서 알게 된 사실입니다.

집에는 달랑 아버님의 군 시절 사진이 8장만 남아있는 상태였습니다.

 

 

**  아버님의 군 부대 추적  **

 

저는 집에 남아있는 사진 8장이 모두 아버님의 현역 시절 사진인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소속 부대도 같은 전우의 좌측 어깨 부대 마크로 추측, 30사단으로 추정했습니다만

국방부 XXX 대령님과 통화 중 소속 부대도 틀리고 사진 8장 전체가

현역 사진이 아니라는 심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30사단은 작년 무한도전에서 박명수가 입대하여 일등 구멍 병사로 등극한 그 부대입니다.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구호는 필승입니다.

 

 

(1) 현역 시절 사진입니다.

 

계급은 당시 일등 중사(병적 증명서에는 현재의 계급 체계인 하사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꺾기 3개 + 작대기 1개

당시 아버님의 군 입대 나이(연세)는 1932년생이므로 19살 전, 후로 추정합니다. 

 

 

소속 부대 추정입니다.

저는 아버님이 전우와 같이 찍은 사진 어깨의 부대 마크로 30사단으로 추정했으나

부대 마크가 꼭 브라자 + 팬티 모양입니다.(인터넷에서 부대 마크에 대해 흔하게 쓰는 글을 그대로 따온 것입니다.)

오해하지 마세요~~~

ㅎㅎ 

저와 통화했던 국방부 XXX 소령님이 기록상으로는 3사단 포병 대대 본부 포대라 하십니다.

저는 사진상으로는 전우들 복장에 30사단 마크가 보인다 했으나 전화를 끊고 다시 8장의 사진을 보던 중 

바로 아랫 사진에서 아버님의 어깨 좌측에 30사단 부대 마크와는 다른 부대 마크를 봅니다.

삼각형 마크 안에 별 3개가 있습니다.

 

허여,

다시 인터넷을 뒤집니다.

결과는 3사단 백골 부대(철원, 당시는 사자 부대라 했답니다.)가 맞습니다.

웹 검색 결과 2012년 12월 2일, 3사단 부대 마크 변경이 있었습니다.

삼각형 별 안에 해골 모양이 추가되었습니다.

 살아도 백골, 죽어도 백골

구호는 백골입니다.

연예인 주원이 지금 이 백골 부대 신병 훈련소 조교로 근무하고 있죠!!

 
변경 전 부대 마크    변경후 부대 마크 

 

 

이 사진의 아버님 좌측 어깨를 보면 변경 전 부대 마크를 볼 수 있습니다.

국방부 XXX 소령님의 말씀이 맞는 모양입니다.

( 하긴 그분은 어디까지나 남아있는 군 역사 자료를 보고 이야기했을 테니깐요~~~ )

 

아버님은 주특기 146의 무선 통신병이셨습니다.

주특기 146이 확실히 무선 통신병인지는 확인이 안 됩니다.

( 지금의 주특기 체제와는 전혀 다릅니다. )

나중에 국방부 회신 메일을 봐야겠죠~~~

 

 

고등학교 때 제가 아마추어 통신 햄(HAM)에 취미가 있어 집에서 똔쓰똔똔(- ㅡ --), 똔똔쓰돈(- - ㅡ -)을 외웠더니

아버님이 옆에서 갑자기 저에게 뭐하냐~~~ 하시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때 알게 된 사실이 바로 아버님이 군대에서 모르스 부호 무선 통신병이었다는 사실입니다.

당시 아버님은 이 사진을 저에게 보여주지 않았지만 

스피커에서 나오는 저 모르스 부호 소리만 듣고도 척척 알아듣는 베테랑 통신병이셨던 것입니다

( 모르스 부호는 길고 짧음으로 의사 전달을 합니다. 짧은 것은 똔(-)이라 하고 긴 것은 쓰(ㅡ)라고 읽습니다. )

일례로 기역(ㄱ)은 똔쓰똔똔(- ㅡ -- ),   니은(ㄴ)은 똔똔쓰똔(- - ㅡ -)  이렇게 읽고 표시합니다.

 

일반인이 알아듣기는 거의 불가능하고 군 무선 통신병도 처음에는 다 종이에 받아 적어야 한답니다.

해독을 못하기 때문에....

당시 아버님도 군 고참들에게 엄청 구타와 갈굼을 당하셨다 합니다.

 

며칠 전 할아버지 군대 사진이야~~ 하고 예나에게 보여 주었더니

예나는 이 사진이 무섭다고 합니다.

왜냐고 물어봤더니 옛날 드라마 보면 밤에 간첩이 이불 뒤집어쓰고 저런 걸 치는 장면을 봤다 합니다.

ㅎㅎ

 

 

" 그리운 내 고향을 차져서.... "

 

1,953년입니다.(단기 4,286년 - 2,333년 = 서기 1,953년)

6.25 전쟁 5달 후 약관의 19살 나이로 입대, 숱하게 전투를 거치며 죽을 고비도 여러 번 넘기셨다 합니다.

( 고등학교 때 6,25 전투담 학교에 제출한 내용 중 ) 

휴전 5개월을 앞둔 1953년 2월 16일 찍은 사진입니다.

 

왼쪽분,   잘 생기셨죠??

전세도 아군 쪽으로 기울고 휴전이 얼마 안 남아서인지 사진 찍을 여유도 비로소 생기신 것 같습니다.

 

 

(2) 예비역 시절의 사진입니다.

 

다음의 4장 사진은 전역(1954년 9월 20일)후 사진인 것 같습니다.

4장 중 바로 아랫 사진 1장은 현역 사진인지 예비역 사진인지 구분이 안 갑니다.

그 이유는 나머지 3장의 사진과는 배경도 다르고 특히 좌측 상단의 한분은 

현역의 두발 상태라 하기에는 좀 길어 보입니다.

 

당시 우리 군인의 허름하고 열악한 피복 상태를 볼 수 있습니다.

예나는 중공군인줄 알았다고....

ㅎㅎ

그래도 피는 통한다고 할아버님 금방 찾던데요~~~

 

다음의 3장 사진은 전역 후 지금의 예비군 훈련 같은 소집 때 모여서 찍은 사진 같습니다.

제가 그렇게 추정하는 이유는 두발 상태(머리카락 길이)가 현역 때보다 길어 보이고 정리도 안되고 

 얼굴도 나이(연세)가 윗 사진 통신 칠 때보다 좀 들어 보입니다.

또 3장의 사진 복장 상태와 같은 전우분들, 배경이 같다는 것 때문입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마지막 사진

전우와 박원식 대위님과 같이 찍은 사진의 뒷면 주기를 보면  

3장 모두 1956년 3월 24일에 찍은 사진으로 결론이 납니다.

휴전(1953년 7월 27일) 이후여서 그런지 한층 여유로워 보이는 사진입니다.

 

전우분들의 어깨의 30사단 마크가 보입니다.

저는 이 사진을 보고 처음에 아버님의 부대 소속이 30사단인 줄 알았던 것입니다.

 

 

박원식 대위님과 일등 중사들이 모여 찍은 사진입니다.

이런 사진이 보이는 것은 아버님이 제대 후 지금의 예비군 훈련과 같은 군사 소집이 있었답니다.

국방부 XXX 소령, 그분의 말씀입니다.

그러한 사실을 증명하는 이 사진 뒷면에 아버님의 자필 주기가 있습니다.

전우들 성함은 물론 찍은 년도와  날짜까지 쓰셨습니다.

 

윗 사진의 뒷면에 쓰신 주기입니다.

여기를 보면 총 13분들 중 아버님을 뺀 12분의 성함이 적혀있고 

년도는 단기 4,289년 3월 24일로 적고 있습니다.

단기 4,289년은 서기 1,956년입니다.

아버님 제대(1954년 9월 20일 전역)후 2년이 지나 군사 소집 때 

당시의 또래 예비역(?)들과 찍은 사진으로 추측됩니다.

주기에 찍힌 한자가 있는데 제가 한자 실력도 짧고 뚜렷하지도 않아 뭐라 읽을 수가 없습니다.

무슨 기념(記念)이라고 쓰신 것 같은데요~~~

 

영문  30 DIV ArTy는 30th Division Artillerry(30 사단 포병)으로 해석이 됩니다. 

 

아버님 임종(1983년) 후 35년 만에 6.25 참전 군인 국가 유공자 신청을 했습니다.

하지만 이 땅에 남겨진 할머님, 어머님, 2남 2녀의

고생은 오롯이 산자의 몫이 였습니다.

어떻게 살았는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기억하기도 싫습니다.

44살에 홀로 되시어 할머님에 2남 2녀를 키우신 우리 어머님

그 고생을 어떻게 글로 쓸까요??

순서대로 가도 고통인데 자식을 먼저 앞세운 할머님의 고통

집안에 돈 한푼 버는 사람없는데 장남인 저도 2달후인 1983년 4월 1일 입대

집안은 한마디로 풍비박산인데 ...

 

이런 글을 쓰려니 또 눈물이 나네요~~~

 

아버님이 현재까지 살아 계셨다면 금전적으로도, 의료적으로도 보훈 혜택을 받았겠지만

현재 대한민국은 이런 6.25 참전 군인 당사자 이외에 배우자나 자식에게 그 어떤 혜택도 부여하고 있지 않습니다.

젊은 저에게 10원 한 장 달라는 이야기 절대 아닙니다.

고생하신, 너무나 고생하신 저희 어머님에게 이제는 80살, 여기저기 안 아프신 데가 없는 분입니다.

 

어머님의 그 고통과 인고의 세월을 이 정부가 이해한다면

아버님이 받을 수 있었던 그 혜택의

십분의 일, 백분의 일이라도 돌아가실 때까지만 달라는 이야기입니다.

 

애국을 하면 3대가 가난하고 나라 팔아먹은 매국노, 그 집안은 잘 산다라는 말

틀린 말 아닙니다

 

그것이 이 나라의 현실입니다.

과연

대한민국이 정의로운 나라입니까??

 

" 군인 가족을 외면하는 국가에 충성하려는 군인은 없다.~~~ " 라는 사실

이 나라의 위정자들만 모르는 안타까운 사실입니다.

 

 

 

아버님은 6.25 전쟁의 통신병으로, 저는 80년대 전차병으로 이 나라를 지켰고

제 아들이자 당신의 자랑스러운 손자, 정호(일병)는 육군 항공 작전 사령부(항작사)의

치누크(CH-47)를 타고

오늘도 이 땅을 지키고 있습니다.

 

 

 

 

며칠 동안 바쁘게 뛰어다녀 국가 유공자 등록을 마치니 이제서야 아버님, 당신의 명예를 

찾아 드리는 것 같아 저로서도 조금은 뿌듯하고 기쁩니다.

 

 

추후

아버님의 6.25 참전 국가 유공자 증서가 나오면 관련 내용을 다시 포스팅하겠습니다.

어머님도 합장이 가능하다 하니 나중에 동생, 누나와 상의하여

이천에 있는 국립 호국원으로의 이장, 합장을 추진해 보렵니다.

 

 

PS : 며칠 전 정기 휴가를 나온 정호(일병)에게 할아버지 국립 호국원으로 이장할지도 몰라~~~ 했더니

어~~ 저, 거기 아는데요~~ 합니다

니가 어떻게 알아~~ 했더니

부대(경기도 이천)가 국립 호국원과 가까워 몇 번 가서 정신 교육도 받았다 하네요~~~

 

 

 

아버님!!!!

저는 이 한겨울에 오늘도 어머님과 집 사람

아이 둘과 따뜻하게 잘 살고 있습니다.

궁금합니다.

당신이 계신 그곳도 따뜻하신지요??? 

 

 

뵙고 싶어도 두 번 다시 뵐 수는 없겠지만

이 다음에 이승에서의 소풍을 끝내고 다시 아버님을 찾아 뵙는 날

무릎 꿇고 당신이 생전에 그렇게 좋아하시던 소주 한잔 올리겠습니다.  

 

이승에서 저의 아버님이셔서 좋았고, 고마웠고, 존경합니다.

사랑합니다.

   아버님~~~  

 


 

그로부터 20여일 후 

2/1(목) 아버님 기제사에 맞추어 온 국가 유공자 증서입니다.

 

 

 

아버님도 좋아하시겠죠??

ㅠㅠ

 

국가의 존재 목적은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PS : 아래 링크한 글도 한번 읽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관련 글 : 국가 유공자 증서와 제사

http://blog.daum.net/cwk0507/3672 (클릭하세요~~)

 

국가 유공자 증서와 제사

1/12(금), 서울 지방 보훈처에 접수시켰던 아버님의 6.25 참전 유공자 신청이 모두 완료되고 드디어 어제(2/1) 집으로 등기가 왔습니다. 등기 우편이 두개이더군요~~ 먼저 이 글 부터 읽어 주시길 부

cwk0507.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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