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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렝땅 액세서리 】/♠남대문,동대문이야기

물 만난 젊은 감각, 그 행복한 비명들(경향 신문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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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대문 시장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이면 꼭 한번은 들르는 남대문 시장과 동대문 시장.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최대 상권으로 쇼핑객이 항상 인산인해(人山人海)를 이룬다.

엄청난 물류와 함께 천문학적 돈이 왔다갔다한다.

동대문과 남대문의 상권은 최근 재래시장에서 벗어나 현대적 상가로 바뀌고 있다. 이름도 시장에서 이제는 쇼핑타운으로 불린다.

그곳에는 하늘의 별처럼 많은 상가들이 있다. 한두 평 넓이의 작은 상가마다 각자의 생업과 꿈이 있다. 꿈의 씨앗을 뿌리는 젊은이들도 쉽게 만날 수 있다.

이들은 좁은 공간에서 자신만의 상품을 팔며 ‘한국 최고’가 되겠다는 야심을 불태운다. 그곳에는 밤에도 불이 꺼지지 않는다. 교통체증도 밤낮이 없다.

남대문·동대문에서 나름의 벤처를 일구는 젊은이들에게도 밤과 낮이 없다. 남들이 일할 때 일하고, 남들이 잘 때도 일한다.

억척스러움은 상가 사람들의 공통점이다.

직장생활에서처럼 상사의 눈치를 볼 필요는 없다. 하지만 더 무서운 건 손님이다. 손님에게서 외면받으면 끝장이기 때문이다.

요즘 젊은 사장들은 부지런함만으로 승부하지 않는다. ‘무데뽀’ 자리지킴은 성공을 보장하지 못한다. 감각이 필수다.

 의류든 액세서리든 앞선 감각을 발휘하지 못하면 도태된다. 그래서 늘 공부하고 연구한다. 주말에도 이들은 일을 놓지 못한다.

더러는 공장으로 달려가고, 또 더러는 이대 앞이나 숙대 앞으로 최신 패션동향을 살피러 간다. 국제적인 흐름도 알아야 한다.

중국에서 원재료를 수입하는 사람은 중국시장 상황을 늘 주시한다. 과거처럼 좌판을 지키고 선 정적인 풍경은 더이상 찾아볼 수 없다.

매일 끔찍한 전쟁을 치르는 남대문·동대문시장. 젊고 반짝이는 꿈들이 익어가는 곳이기도 하다.

 



-“일본인이 내 밥줄이죠”-

◇가죽제품 전문점 ‘후’ 김현경씨

렝땅 액세서리상가에서 가죽제품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후’ 김현경씨(30)는 2년차 초보사장이다.
그러나 사업감각은 노련하다. 불경기라고 다들 안달이지만, 큰 어려움 없이 가게를 잘 꾸려나가고 있다.

아예 공략시장을 국내가 아닌 일본으로 설정했기 때문이다. 반품이 없고 마진이 좋은 편이다.

수출물량의 90%는 일본에서 소화되고 그밖에 미국·유럽연합(EU)에서도 팔리고 있다.
후를 열기 전 김씨는 남대문시장 내 친척이 운영하는 목각제품 가게에서 일했다. ‘수습기간’ 4년 동안의 결론은 ‘일본인을 상대하는 업종을 택하자’였다.

그래서 고른 품목이 가죽. 한국인보다는 일본인들이 훨씬 선호한다. 가죽으로 만든 다양한 액세서리를 팔지만, 특히 팔찌에 주력하고 있다.

도매상이어서 단가는 개당 1,500원선.
품목을 잘 골랐다고 성공이 보장되는 건 아니다. 일본인 취향을 연구하기 위해 매달 일본 패션잡지 수십 권을 사 본다. 아이디어를 얻고 조금씩 변형하기도 한다.

홍대·이대·신촌 등지에 수시로 나가 시장조사를 한다.
김씨는 상가가 문을 닫는 시간인 오후 5시부터 더 바빠진다. 이곳저곳 둘러보고, 살펴봐야 할 것이 너무 많다. 판매는 물론 제품연구에다 구매·제작까지 신경써야 한다.

주로 다루는 가죽은 쇠가죽이다. 값이 싸면서도 질감과 염색상태가 좋은 것을 골라야 한다.
또 좋은 제품을 만들려면 액세서리의 소재인 주물 선택에도 신중해야 한다. 제품의 깔끔한 마무리 역시 그가 신경써야 하는 부분이다.

조악한 제품은 미관상으로도 안 좋지만, 늘 몸에 지니고 다니는 물건인 만큼 상처를 만들 수도 있다.
몸이 힘들고 바쁘지만 김씨는 요즘 신이 난다. 자신이 만든 제품이 세계 각지로 나가 낯모를 외국인의 몸에서 소중하게 반짝이고 있으리란 생각 때문이다. 



-“하루 25시간을 살아요”-

◇머리띠 전문점 송선회씨

연세상가 내 머리띠 전문점 ‘주희’ 송선회씨(30)의 하루는 무척 길다. 새벽 3시반, 서울 은평구 신사동 집에서 잠에서 깬다. 일산 공장에 들렀다가 5시 남대문에 도착한다. 오후 4시 장사가 끝나면 재료를 구하러 동대문시장 등지를 들렀다가, 다시 일산 공장으로 향한다. 바빠서 연애는 꿈도 못 꾼다.
1997년 전문대를 졸업하고 삼촌 밑에서 장사를 배우다가 월급을 모아서 지금의 사업을 인수했다.

대학에서 전기를 전공했지만 장사에 관심이 많아 어려서부터 남대문에 나와 삼촌 일을 도왔다. 벌이가 예전 같지는 않아도 월급쟁이 친구들보다는 좀 나은 편이란다.

친구들과 어쩌다 술 한잔 하는 일요일에도 음식을 날라온 여종업원의 머리띠를 유심히 들여다 보는 게 직업병이라면 직업병인 셈.

 

 


-“푼돈 모아 태산 만들죠”-

◇휴대폰줄점 신경희씨

연세상가 내 신경희씨(29)는 휴대폰줄을 판다. 1999년 장사를 시작했다. 입시학원에서 7년 동안 수학교재를 편집하다 지난 98년말 IMF 여파로 직장을 잃었다.

‘IMF실업자’는 남대문에서 새로운 적성을 발견했다.
개당 1,000~2,500원 하는 단가가 낮은 제품. 그러나 해야 하는 일은 웬만한 기업체 사장보다 훨씬 많다.

비용을 낮추기 위해 중국에서 재료를 수입하고, 직접 디자인까지 한다. 상도동 공장에서 물건을 조립하는 40명의 아줌마들에게 품삯을 꼬박꼬박 줘야 한다.

만만한 일이 없다. 최근 의욕을 가지고 맞은편에 나온 상가를 ‘인수’해 목도리로 ‘사업다각화’를 꾀했다.

춥지 않아 인수성과는 별반 못 올리고 있지만 크게 실망하진 않는다. 봄엔 머리핀을 팔아볼 생각이다.

 

 


-“곧 뜹니다, 뜬다니까요”-

◇아동복 전문점 문경윤씨

포키아동복상가 내 ‘리버스키즈’ 문경윤씨(38)는 큰 꿈을 가지고 창업했다.
의상학과 출신으로 의류회사에서 오랜 경험을 쌓은 끝에 2000년 아동복가게를 열었다. 마찬가지로 의상디자이너인 아내 전은주씨(35)와 의기투합해 내린 결론이다.

디자인·제작·판매를 모두 책임진다.
수입은 직장생활보다 낫다. 대신 두 배는 더 바쁘다. 도·산매를 겸하기 때문에 눈코 뜰 새 없다.

오후 10시부터 오전 9시까지는 도매 상대. 오후 4시까지는 일반 손님들을 상대로 옷을 판다.

아동복은 맵시뿐 아니라 활동성·위생 등 고려해야 할 게 성인복보다 훨씬 많다.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판이지만 자신의 브랜드로 옷을 만드는 게 너무 즐겁다.

‘리버스키즈’를 한국 사람 누구나 아는 브랜드로 육성할 포부를 갖고 있다.

 

       ----- 2003년 12월 9일자 경향 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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